2017년 마지막 날, 극장에서 1987– 이 영화를 보았다. 아내와 청년이 된 아들 둘이서 같이 봤다. 마지막 장면서, 옆에서 같이 보던 아이들이 알아차릴 만큼 대성통곡을 해버렸다. 89학번인 아내도 약속처럼 그 장면서 함께 흐느꼈다. 아무튼 그랬다. 왜 통곡이 터져 나왔는지 지금까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.

지난 세월이 속절 없어서 였을까? 아니면, ‘운동이라는 당위’를 좇아 살던* 20살부터 30살까지 10년보다 오히려 소시민으로 산 30살 이후 지금까지 20년이 더 열정적이고 더 진실한 삶이었다는 스스로 믿음이 흔들려서 였을까? 아무튼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‘가투에 나선 수많은 남학생에게 20대 때 데모를 열심히 하던 스스로를 동화시키고 있다’고 생각했다.

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실제로는 내가 동화시켰던 건 오히려 연희였던 것 같다. “운동의 당위에 대해 이미 알 만큼 그 한계조차 봐 버렸기에 희망을 걸 수 없어서 외면”하던 연희… 그런 연희와, 어쩌면 치열했던 이십대를 잊고 현실을 외면하고 소시민 일상을 살아온 30대 이후 내 삶을 동화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.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연희가 버스 위에서 팔뚝을 올릴 때 어쩌면 지난 겨울, 광장에 다시 나가 팔뚝을 흔들던 나를 연희와 동화시킨 건 아닐까.

그 순간 치열한 시대에 동참을 시작하는 연희의 팔놀림에서, 일상에 묻혀 살아온 3-40대의 내 근과거를 깨고 다시 광장에 나선 나의 현재가 오버랩 된 건 아니었을까. 뜨거웠던 20대, 우리들의 대과거는 그렇게 다시 살아난 건 아니었을까. 아무튼 영화는 끝났다. 영화가 끝나 눈물을 닦고 극장 문을 나서듯 현실로 돌아오고, 나는 “운동의 당위에 대해 이미 알 만큼 그 한계조차 봐 버렸기에 희망을 걸지 않겠다는 오랜 믿음”을 다시 일깨우고 “가투에 나서기 전의 연희”처럼 내 소소한 일상을 열심히 살 것이다. 그 오랜 믿음을 다시 다질 것이다.

하지만.., 또 다시 영화같은 현실이 시작되면? 우리는 다시 광장에 나가 다시 팔뚝을 흔들 것이다. 그렇게 ‘죽었던’ 우리 젊음을 다시 불러올 것이다. 하지만 여전히 그 오랜 믿음을 다질 것이다.

운동의 당위에 대해 이미 알 만큼 그 한계조차 봐 버렸기에 희망을 걸지 않겠다!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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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사진: 1991년 구속  기사 캡처

 

 

1993년 수배 관련

 
Jin-uk Kim

2018년 1월 6일 ·